마당쇠의 마실가기

미국 동.서부 마실가기(6)-스탠포드 대학교, 샌프란시스코

마당가에서 2017. 2. 4. 15:29

2013. 10. 05(토)


오늘은 새벽 5시 40분 출발해서 산호세와 샌프란시스코 중간에 위치한 스탠포드대학교를 방문하고 이어서 세계 5대 미항 중의 하나인 샌프란시스코로 올라갈 예정이다.


서부의 역사는 스페인이 남미를 점령한 후에 북미로 올라오는데 앞에 전교를 목적으로 신부님과 수녀님을 대동해서 성직자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북미를 점령하는데, 정착하는 신부님이나 수녀님 이름 앞에 샌과 산타를 붙였다. 샌프란시스코는 프란시스코 신부님이 정착한 곳이고, 산타 바바라는 바바라 수녀님이 정착하여 전교를 한 곳을 뜻한다.


서부의 대명사 캘리포니아 주는 18세기까지 원주민인 인디언이 살고 있던 평화로운 땅이었으나,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자연스럽게 맥시코로 편입되었으나, 1846~1847년 발생한 미국-맥시코간의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면서 1948년 5월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체결된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에 따라 전쟁배상금의 명목으로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애리조나 주 전체와, 뉴멕시코, 콜로라도, 와이오밍 주의 일부를 전쟁배상금의 명목인 1500만 달러의 싼값에 미국이 맥시코로부터 사들였으며 대미 부채 325만 달러를 탕감했다고 한다. 협정이 체결된 1848년 그 해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인근 아메리칸 강에서 사금이 발견되고 이듬해인 1849년 소문이 나면서 골드러시가 시작되는데 싼값에 땅을 억지로 뺏긴 그 해에 금이 발견되었으니 맥시코에서는 얼마나 배가 아팠을까?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의 배경은 텍사스는 스페인 땅

이었는데 멕시코가 독립하면서 멕시코 땅이 되고, 루이지애나를 통치한 프랑스는 도밍구(하이티)에서 발생한 흑인노예들의 반란으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때 루이지애나를 위임 통치하던 스페인 총독이 돌연 미국 배의 운항을 금지하자, 다급해진 나머지 미국은 프랑스 정부와 항구 사용에 대한 협의를 하는데, 노예 반란으로 머리가 아프던 프랑스는 돌연 그러면 루이지애나 전체를 사라고 제안하고 이에 미국이 응해 루이지애나를 1803년 1,500만 달러에 매입하게 된다. 당시 루이지애나는 지금 주가 아니라 미국 본토의 1/3에 해당하는 광대한 영토이었다. 

                                                                                                                                                                         미국이 멕시코로부터 사들인 땅


루이지애나를 사들인 미국의 정착민들은 야금야금 서부로 계속 이동하게 되고, 결국 인접한 텍사스에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가톨릭을 믿는 멕시코와 개신교를 믿는 미국 정착민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고 멕시코 정부의 노예제도 폐지에 따른 정착민들의 반발로 결국 텍사스 혁명이 발발하고 이어 1836년 멕시코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9년 후인 1845년 미국의 28번째 주로 미국 연방의 일원이 된다.



                미국이 프랑스로부터 사들인 땅


미국 연방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던 텍사스(외로운 별, Lonely Star)는 1846년 종주권을 주장하는 멕시코와의 갈등으로 전쟁이 발발하는데 처음에는 패배하나 나중에 연방의 지원을 받아 1847년 9월 14일 멕시코시티가 미국 연방군에 함락된다. 이에 따라 멕시코 과달루페에서 과달루페-이달고 조약이 체결된다.


아침 8시 30분 프레즈노를 떠나 99번 도로를 이용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다가 152번 도로로 갈아타고 서쪽으로 신나게 가다보니 출발한지 약 3시간 만에 휴게소 Casa de Fruta에 도착했다. 아침의 서늘한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그렇지 않아도 서늘한 공기가 으슬으슬한데 옆에 보니 웬 주전자에서 물이 쏟아지는 것을 보니 더 춥게 느껴진다. 사람 몸통만한 할로윈 데이 용 호박이 잔뜩 판매를 기다리고 있다.


다시 차에 올라 산호세를 지나 스탠포드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스탠포드 대학에 도착하니 오전 10시다.

스탠포드 대학교를 설립한 스탠포드는 원래 동부의 변호사 출신으로 1848년 황금이 발견되고 1849년부터 골드러시가 불 때 서부로 와서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었는데, 나중에 상원의원과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했던 사람이다. 정치를 하면서 대륙횡단철도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친구들과 센트럴퍼시픽 철도회사를 설립하여 샌프란시스코에서 동부로 철도를 까는 사업을 한다. 나중에 캘리포니아 재벌 빅4에 포함되나 임금착취 등의 혐의로 욕을 많이 먹지만 재산을 100% 사회에 환원한다.


원래 하버드 입학 예정이던 외동아들이 유럽여행 중에 독감으로 이탈리아에서 사망하자 부인 제인여사와 함께 하버드대학교를 방문 기부의사를 밝히나 거절되자,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목장부지에 10년에 걸쳐 직접 학교를 짓게 되는데 그것이 서부의 명문 스탠포드대학이다. 학교 교정이 서울 면적의 1/13이며, 미국에서 교정이 제일 크며, 미국에서 TOP 5에 드는 대학이라 한다. 야후, 구글, HP 등 실리콘 밸리의 대부분의 창업자가 이 학교 출신이다


스탠포드 대학교, 왼쪽의 높게 솟은 탑이 후버타워다.


메모리얼 처치, 제인 스탠포드 부인이 죽은 아들 스탠포드 주니어를 추모하기 위해 직접 지은 건물이란다. 졸업식 등의 모든 행사가 이 앞 광장에서 이루어진다.



 

팜 드라이브를 바라보는 중앙광장 



오귀스트 로댕의 시민 상


스탠포드 대학교 구경을 마치고 식사하러 달려간 인근의 In & Out 햄버거 집, 우리나라에는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프랜차이즈 조건이 까다로워 아무데나 영업권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에 오면 꼭 먹어야 한다고 해서 한 입, 음.... 맛있네..


예전에 미군의 소리라는 라디오 방송탑이 있었는데 지금은 개인 라디오 방송용으로 사용되는 방송탑이 있는 트윈 피크스에서 바라 본 샌프란시스코 전경


저 왼쪽에 금문교, 중앙에 알카트레즈섬, 우측에 샌프란시스코의 마천루가 보인다.


서부의 중심은 샌프란시스코가 있는 북가주이다. 캘리포니아 전체 인구가 4,000만 명인데 LA 일대가 2,000만 명, 샌프란시스코 일대가 1,000만 명, 내륙지방이 1,000만 명이란다. 1848년 금이 발견되고 이듬해인 1849년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자 7마일*7마일의 도심을 만들었기 때문에 도시가 매우 작다.


미치도록 예쁜 도시이자 젊은이들이 첫 손을 꼽는 도시가 샌프란시스코인데, 만의 길이가 자그만치 400Km란다. 샌프란시스코 순수 인구는 80만 명 정도이며, 위성도시까지 합치면 800만 명 정도이다. 히피문화가 나온 곳이 여기이고, 1960년대에는 반전데모, 흑인데모, 원주민데모 등 데모의 천국이었으며, 지금도 동성애자들이 많은 곳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그런 성향의 군인들을 퇴역시켜서 그렇단다.


드윈 피크스에서 바라 본 금문교


드윈 피크스에서 바라 본 알카트레즈섬


시청건물 1906년 지진으로 다 파손되고 1910년에 다시 신축한 건물이다. 워싱턴 국회의사당 건물보다 6피트가 더 높다고 한다.


아시아 아트 뮤지엄, 종근당 창업주 3째 동생 이종문이란 분이 실리콘 밸리에서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버는데 시청에 기부를 해서 한국관을 만들려고 했으나 시청이 투자를 같이 해서 아시아 박물관을 만들자고 제안해서 만든 건물이다. 이름에 이종문 센터라고 벽에 같이 새겨져 있다.


세인트 피터 & 폴 처치(성 베드로와 바오로 성당) 예전에 우피 골드버그가 주연으로 나왔던 시스터 액트의 배경으로 나왔던 성당이다.


롬바드 가, 저 위로 도로의 경사를 완화하기 위하여 1920년 조성된 8개의 급커브로 5m 간격으로 구불구불하게 만든 길 위로 러시아 선원들의 묘지가 있어서 불린다는 러시안 힐이 보인다.


샌프란시스코는 49이라는 숫자가 상징적으로 많이 사용되는데 1848년 금이 발견되고 1849년 500명의 인구가 10만 명으로 증가했다고 하니 그 증가세 어마어마하다.


샌프란시스코는 원래 잔 서터라는 선구자가 멕시코 정부로부터 토지를 임차하여 농업왕국을 만들었는데, 10년에 걸쳐 요새도 만들고 인원도 300명이나 있었는데 새크라멘토 인근에 제빵공장을 짓다가 실무책임자였던 제임스라는 사람이 겨울에 공장 건축을 중단하고 제재소를 둘러보러 가다가 강가에서 반짝이는 물체를 발견하고 노 터치’라고 소리 질렀다고 전해지는데, 이것이 일본으로 전파되어 노다지가 되었다고 한다. 제임스로부터 보고를 받은 잔 서터는 소문이 날 것을 두려워했는데 결국 우려대로 1년 만에 몰려든 사람들과 총잡이들에게 잔 서터는 농업왕국을 모두 빼앗겼다고 전해진다.


코이트 타워는 텔레그래프 힐에 건립된 높이 64m의 타워로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시 희생된 소방대원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1933년 코이트 여사가 건립한 탑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돌로레스 성당은 1776년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후니페로 세라 신부에 의해서 완공되었다고 하는데, 내부에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그림으로 가득 차 있다. 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지정되었다. 캘리포니아 미션 중 6번째로 건립된 미션 돌로레스 성당은 자체 유물을 수집해 놓은 박물관과 정원이 있다. 선교원 옆 묘지에는 샌프란시스코의 개척자들과 원주민들이 묻혀있다. 정식 명칭은 샌프란시스코 드 아시스 선교원(Mission San Francisco de Asis)이며, 돌로레스라는 이름은 '슬픈 성모 마리아 호수'에서 따왔다. 오른쪽 건물은 1913년 재건축되었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 하면 히피문화가 떠오르는데 1960년대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탄생하였으며, 원색의 의상과 장발로 상징되던 그들은 사랑과 평화의 공동체적 삶을 추구했다. 또한 게이들의 거리로 유명한 카스트로 거리는 다양성 존중의 상징으로 무지개무늬로 유명한데, 집에 걸려 있으면 사는 집을 뜻하고 가게에 걸려 있으면 게이를 환영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트랜스 아메리카 빌딩은 일명 피라미드 타워로 불리는데 1972년 건립되었으며, 높이 260m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다. 우리나라의 63빌딩 264m라고 하니 비슷한 높이이다.


검은색 4각형 빌딩이 예전에 타워링이라는 재난영화에 등장했던 52층의 뱅크 어브 아메리카 빌딩이다.


또한 샌프란시스코하면 생각나는 것이 청바지다. 1849년 골드러시 때 리바이스 형제가 이곳으로 오는데 광부들이 입는 옷이 금방 헤지는 것을 보고 자기가 타고 온 역마차 천을 이용해서 만든 것이 청바지의 시초이며, 리바이스 본사가 이곳에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케이블카. 길 아래에 케이블이 설치되어 있고 이 케이블로 당겨서 움직인다.


람선을 타고 샌프란시스코 만을 한 바퀴 돌아오는 배를 탔는데, 이곳이 낭만과 자유의 도시 샌프란시스코를 인정하게 만드는 모습이 보인다. 두 젊은이가 홀랑 벗고 요트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과연 이곳이 히피의 탄생지이자, 동성애자의 땅이라고 할 만큼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보여준다.


샌프란시스코에는 부딘이라는 유명한 빵집이 있는데 동그란 빵 속을 파내고 그 안에 조개 스프를 넣은 것이다.


빵집 부딘 카페에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면서 한 컷.

 

아 좀 배경을 집어넣어서 잘 좀 찍어 봐유~


 금문교는 4년의 세월과 3,500만 불의 건설비, 지구를 세 바퀴 돌 수 있는 12만 9천km의 케이블, 그리고 건설과정 중 11명이 희생된 끝에 1937년 완공되었는데 준공시 세계에서 가장 큰 다리였다. 샌프란시스코 시와 마린 군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설계는 조셉 스트라우스가 했고 전장 2,737m 폭은 27.43m 형하 공간은 약 67m이며, 교각의 높이는 수면에서 227m로 삼성동 무역센터빌딩(228m)과 비슷한 수준이고 다리는 시속100마일(160km/h)의 강풍에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해서 1989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당시에도 건재를 과시했다고 한다. 통행요금은 남행에 한해서 6불을 받는다. 다리에는 인도도 있어서 바람만 잠잠하다면 40분이면 걸어서 건널 수 있다. 지금도 미국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다. 


5mm 철선 300가닥이 27,572개가 들어있다는 케이블 1936년 공법으로 철선을 넣고 랩핑한 것이다. 안타깝게 1,100 명이 떨어졌단다.


여그가 어디여? 아 부자들과 예술가들이 모여 산다는 작은 버드나무라는 뜻의 소살리토 여, 한 채에 몇 십억씩 한다 안카드나....

 

알카트레즈 섬은 니콜라스 케이지와 숀 코네리가 열연했던 영화 The Rock에서 배경으로 나왔던 곳이다. 스페인어로 펠리컨을 뜻하는데 1854년 처음으로 등대가 세워지고 남북전쟁 당시에는 연방정부의 요새가 있었다고 하는데 높이 41m의 절벽과 주변 조류의 흐름이 빠르고 수온이 낮아 탈옥이 불가능하다는 이상적인 감옥이다. 1859년부터 미군의 요새로 사용하다가, 1907년부터는 군대에서 감옥으로 사용하다가 1934~1963년 연방정부 감옥으로 운영되어 알 카포네 등이 수감되었던 감옥으로 유명한데, 1963년까지 흉악범을 위한 감옥으로 운영되다가 현재는 사람은 살지 않고 관광지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영화 더 락에서 숀 코네리가 딸을 만나던 곳인데 팔레스 오브 파인 아트 시어터라 불린다. 결혼식도 하고 영화 촬영도 하는 명소다.


우측으로 나무에 가려진 곳이 샌프란시스코 국립묘지이다. 세계2차 대전과 베트남전, 한국전쟁에서 숨진 전사자 7만 명이 잠들어 있다. 그동안 미국이 수행한 전쟁 중에서 한국전쟁이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전사자를 낸 전쟁이었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베이 브릿지 중앙에 섬이 하나 있는데 예르바 부에나 섬이고 그 앞에 보물섬이라는 애칭을 가진 인공 섬이 하나 있는데 예전 멕아더 원수의 미 태평양 함대 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다리 건너 왼편에 공립인 버클리 대학이 있다.


또 남쪽에서 알카트레즈 섬을 바라볼 때 뒤에 천사도란 섬이 하나 있는데 예전에 미국 이민국과 수용소가 있던 곳이다. 안익태, 안창호 선생들이 미국에 들어올 때 이곳에서 검역을 하고 허가가 날 때까지 대기했던 섬이다. 지금은 엔젤 아일랜드 주립공원이다. 


피셔맨즈 워프는 어부들의 부두를 뜻하는 말로 우리말로 선창가 먹자골목이다.


저녁 6시 반 경 골든게이트 공원 인근에 있는 식당 한일관에 도착했는데, 차를 댈 자리가 없어서 두 바퀴째 돌다가 차를 세웠다. 차를 댈 곳이 없는데 차를 세우고 사람이 내리면 주민들이 바로 고발한단다.


내일 아침은 샌프란시스코 7시 비행기다. 오늘 아침에도 3시에 일어났더니 졸린다. 게다가 호텔이 산호세 위에 있는 밀피타스라서 한일관에서 1시간 거리다. 한참을 자면서 가야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