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22(토)
호텔 조식 후
바르셀로나 관광
▶ 구엘 공원
가우디와 구엘의 걸작인 구엘 공원은 바르셀로나에 부유층을 위한 전원주택단지를 만들고 싶었던 '구엘'의 계획으로 시작됐다. 구엘은 1900년에 가우디와 함께 공사를 시작했지만 공사가 채 끝나기 전에 사망했고, 이후 자금난에 시달리다가 결국 공사는 중단되고 말았다. 1922년에 당시 완성된 건물과 조형물, 가우디의 생가 등을 포함한 이곳은 시에서 운영하는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지역 시민들의 휴식의 공간으로 활용되어 왔고,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끄는 두 건물은 동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외관을 가지고 있으며 가우디의 독특한 건축철학과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도마뱀 분수와 타일 벤치, 광장 등 아름다운 공원 곳곳에는 가우디의 창의력이 묻어난다. 198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바르셀로나의 랜드마크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가우디의 마지막 작품이자 바르셀로나의 상징이자 랜드마크인 대표적인 건물이다. 지역 시민들의 성원과 모금에 힘입어 1882년에 짓기 시작한 성당으로, 초기에는 '비야르'가 건축과 설계를 맡아 진행했지만 1883년부터 가우디에게 넘겨졌다. 가우디는 새롭게 건물을 설계했고 죽는 날까지 40년 이상을 이 성당의 건설을 책임졌으며, 말년의 15년간은 여기에만 매진했다고 한다. 하지만 건물이 완성되기 전 1926년 가우디는 생을 마감했고 이후 다른 건축가들이 이 성당을 짓게 되었다. 1935년 스페인 내전으로 건축이 중단되었다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 재개되었다. 착공한 지 130여년이 넘어가는 현재까지도 공사가 진행 중이며 언제 완공될 지 예측할 수 없다. 지하에는 가우디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으며 성당 안쪽에는 성당 건축 과정을 담은 박물관이 만들어져 있다. 내관은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와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꾸며졌으며 외관 역시 정교하고 고풍스럽게 지어졌다. 성당의 큰 문인 파사드가 3개(탄생의 문, 수난의 문, 영광의 문)이며, 2026년을 완공 목표로 하고 있다. 완공 시 건물 크기는 가로 150m, 세로 60m, 높이 170m로 예상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바르셀로나가 한눈에 다 보인다고 한다.
▶ 람블라스 거리
예술과 낭만이 있는 바르셀로나의 대표 거리 '람블라스''람블라스 거리'는 카탈루냐 광장에서 남쪽 해안가로 이어지는 거리를 말한다. 원래 이곳에는 작은 시냇물이 흘렀지만, 19세기에 대로로 바뀌면서 사람들이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거리로 바뀌었다. 필수 관광코스인 만큼, 바르셀로나의 거리문화를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멋스러운 유럽풍 건물 사이로 가로수가 심어져 있는 거리에는 다양한 악세서리, 기념품, 소품가게 등이 위치해 있으며 노천카페와 레스토랑, 극장도 있다. 거리를 걷다보면 다양한 식료품과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는 '산호셉 시장(보케리아 시장)'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람블라스는 거리 위에서 만날 수 있는 예술로 유명하다. 행위예술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초상화를 그려주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으며 '호안미로'와 '가우디'의 작품들도 볼 수 있다. 거리 끝에는 콜럼버스 탑이 세워져 있는데, 이곳에서는 '람블라스 거리'의 전경과 시내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 콜럼버스 기념탑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첫 발을 내딛은 곳, '콜럼버스 기념탑'은 람블라스 거리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 돌아와서 첫 발을 내딛었던 지점에 탑이 세워진 것이다. 1888년 바르셀로나 박람회 당시 미국과의 교역을 기념하면서 고딕양식으로 탑을 지었으며, 높이는 약 60m 정도다. 꼭대기에는 지중해를 가리키고 있는 콜럼버스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탑 하단에는 정교한 조각상들이 자리하고 있어 그 모습이 멋스럽고 근엄하다. 콜럼버스의 업적을 알 수 있는 자료들도 전시되어 있으며 엘레베이터를 타고 탑 전망대에 오르면 바르셀로나의 시가지와 지중해의 풍경을 360도로 감상할 수 있다.
바르셀로나 근교의 아찔한 절벽의 도시 몬세라트로 이동(약 1시간 소요)
▶ '검은 마리아상'과 소년합창단으로 유명한 몬세라트 수도원 (내부관람), 프란체스코 교황이 방문할 만큼 유명하다.
▶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는 기암 절벽이 몬세라트 수도원을 감싸고 있다.
▶ 몬세라트 케이블 카 탑승
(1인 30유로 / 소요시간 약 20분 소요)
카탈루냐 지방(카탈루냐어: Catalunya)는 이베리아 반도 북동부에 있는 스페인의 지역이다. 전체 면적은 32,108 km²이며, 2012년 기준 약 757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주도는 바르셀로나이다. 바르셀로나 주, 지로나 주, 예이다 주, 타라고나 주의 4개 주로 나뉘며, 다시 41개의 세부 단위인 코마르카로 나뉜다. 프랑스 국경 내의 카탈루냐 델 노르트 역시 문화적으로는 카탈루냐의 일부이다.
푸른 바다와 오렌지 나무그늘이 있는 발렌시아로 이동 (약 3시간 30분 소요)
발렌시아(스페인어: Valencia)는 스페인 발렌시아 주의 주도이다. 인구는 약 81만 명(2008)으로 제지(製紙)·담배·식료품 공업의 중심지이며 마요르카 섬과 함께 보양·관광지로 되어 있다.
기원전 138년에 로마의 식민 도시로 건설된 마을에서 기원을 갖는다. 인구는 약 80만 명으로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 이어 스페인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다. 발렌시아 도시권의 인구는 조사 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약 170만 명 - 약 230만 명이다. 투리아 강 하구에 위치하며, 발렌시아의 기후는 온난하고 강수량이 적은 지중해성 기후이다. 발렌시아에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라론하 국립 도자기 박물관, 발렌시아 대성당 등이 있다. 중세 스페인의 전설적 인물 엘 시드가 활약한 곳이다.(위키백과)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약 3만 5천 년 전에 피레네 산맥을 넘어 현재의 이베리아 반도로 크로마뇽인과 유사한 현대적 인류가 진출하여 거주하기 시작했다. 북부 지방의 알타미라 동굴에는 이러한 선사 시대의 유적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 약 기원전 1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벽화가 남아 있다. 아타푸에르카 지방에서 발견된 새로운 유적에서는 이미 백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지역에 살았던 고대의 두 민족은 이베리아족과 켈트족이다 이들은 지중해 쪽과 북동쪽에서 남서쪽에 모여 살았으며, 이후에는 대서양 방면에도 거주하기 시작했다. 코임브라 및 브라카와 세고비아에는 켈트족의 고대 도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한편 이베리아 족은 그들의 언어를 이베리아 반도의 두 번째로 긴 강 이름인 에브로에 남겼다. 이베리아 족의 후예 중 한 갈래인 바스크족은 피레네 지방의 서부를 점령했다. 기원전 500년에서 300년 사이에는 페니키아인이 들어와 살았으며, 그리스인도 지중해 연안에 그들의 교역 중심지인 식민 도시를 건설하였다. 그중 현대에도 남아 있는 도시가 엠푸리아 및 마라가, 아리칸테가 있다. 페니키아인이 세운 도시로는 카르테지가 있다. 페니키아인은 그 뒤 로마 제국에게 정복당한다. 로마와 대적하여 유명한 한니발의 아버지인 하밀카르 바르카가 세운 카르타헤나가 현재까지 도시로 남아 있다. 그의 이름은 또한 당시 도시 중 하나인 바르키노에 남았는데, 이 이름에서 바르셀로나가 유래했다고 한다.
스페인의 로마 시대 옛 이름인 히스파니아는 로마 제국의 일부였는데, 이때부터 이베리아 반도는 약 500년간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는다. 트라야누스, 테오도시우스 1세 등이 이곳 출신이었다. 로마 제국이 쇠퇴하면서 5세기쯤 게르만 족이 들어왔으며, 이어 서고트족, 수에비족, 반달 족 등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이베리아 반도로 들어왔다. 시고트 족이 세운 왕국이 점차 세력을 뻗쳐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을 지배했으며, 711년 우마이야 왕조의 타리크 이븐 지야드 장군이 이끄는 아랍인과 베르베르인 연합군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피레네 이남의 안달루시아(포르투칼, 스페인)를 정복했다. 그때부터 781년 동안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다. 13세기 초부터 북쪽의 기독교 세력이 남진하기 시작하는데 이를 레콘키스타(재정복; 국토 회복 운동)라고 한다. 이슬람 세력이 후퇴하고 프랑크족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스페인은 카스티야 왕국, 아라곤 왕국, 그라나다 왕국, 나바라 왕국 등 크게 네 개의 왕국으로 나뉘어서 통치하게 된다. 1469년 아라곤의 왕위 후계자 페르난도와 카스티야의 왕위 계승 후계자 이사벨의 결혼으로 공동 국왕이 지배하는 왕국이 성립되고, 1492년 무슬림의 마지막 보루이던 그라나다를 정복함으로써 이베리아 반도를 통일한다. 같은 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였으며, 이후 절대 왕정과 식민지 개척을 추진하여 스페인은 가장 강대한 제국으로 떠올랐다.
16세기와 17세기 대부분에 걸쳐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누리는데, 당시 남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 멕시코, 미국의 남서부 지방, 필리핀, 마리아나 제도, 지금의 포르투칼,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를 정복하고, 북부 아프리카까지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이때부터 ‘해가지지 않는 제국’이라는 별칭을 얻는다.
그러나 이러한 전성기는 영원하지 못했으며, 1580년대 말 무적함대가 영국에 패배하고, 오스만 제국의 급성장과 로마 가톨릭 내 교회 개혁문제로 지속적으로 내전에 빠져들어 오랜 내분 끝에 포르투칼이 독립을 쟁취하고, 네덜란드도 1648년 완전 독립하기에 이른다. 스페인은 18세기 초부터 일어난 왕위 계승 전쟁 동안 영국과 오스트리아에 방대한 영토를 내주면서 더 이상 해상 강국의 지위를 누릴 수 없게 되며, 1793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프랑스의 종속국이 된다. 그러면서 쿠바와 푸에르토리코를 뺀 모든 라틴 아메리카 식민지를 잃게 된다.
20세기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프란시스코 프랑코 독재 정권 아래에서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75년에 독재 정권이 막을 내린 이후 스페인은 고도의 경제 발전과 사회적 안정을 이루었으며, 1986년에는 유럽 연합에 가입했다.(위키백과)
호텔 투숙 및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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