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쇠의 마실가기

발칸반도 성지순례(7)-보스니아 사라예보

마당가에서 2017. 1. 21. 17:16

2015. 6. 14(일)


보스니아의 트레베비치 산 기슭을 흐르는 밀랴츠카 강의 좁은 골짜기에 있는 사라예보는 이슬람교적 특성이 강한 많은 모스크를 비롯해 내부가 장식된 목조주택들과 옛 투르크인들의 장터가 있고 시민의 거의 절반이 이슬람교도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1878년 투르크를 축출하고 1908년에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를 공식적으로 합병하자 보스니아의 세르비아인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왕위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부인을 암살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정부는 이 사건을 대(對)세르비아의 전시동원을 위한 구실로 이용하여 제1차 세계대전을 재촉했다. 1918년 사라예보 의회에서 유고슬라비아와의 통합을 선포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방아쇠를 당겼던 라틴다리. 그 뒤로 Museum이라 쓰여진 골목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암살당했다.


 1981년 5월 13일 오후 5시 17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 베드로 광장에서 터키의 과격파 청년 알리 아그차로부터 불과 3m 거리에서 총격을 받았다. 5시간 12분에 걸친 대수술 후 교황은 회복되지 않은 쇠약한 몸으로 "저에게 총을 쏜 형제를 진심으로 용서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그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하고 말했다. 교황은 2000년 대희년 때 대통령에게 자신의 저격범인 아그차의 사면을 청하는 서한을 보냈고, 아그차는 석방됐다.


저격 사건이 있은 후 교황의 무개차에는 두꺼운 방탄유리가 설치됐다. 1992-1995년 보스니아 내전이 종결되자 1997년 4월 교황이 '유럽의 화약고'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사목방문을 발표하자 측근들은 신변 안전을 염려해 거듭 방문 취소를 간청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성 베드로 광장 말고 다른 곳에서 다쳐본 적이 없습니다. 다들 걱정 마십시오. 괜찮습니다." 라고 하면서 계획대로 방문하여 보스니아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가톨릭 신자들을 지지했는데 이 동상은 당시 요한바오로2세의 방문을 기념하여 제작되었다.

또한 1973년 이에리사가 주축이 된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의 단체전 우승으로 알려진 도시이며, 1984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이다.

독일 베를린 장벽은 1989년 5월 부다페스트에서 헝가리 정부가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을 열기로 결정 약 15,000명의 동독인이 서구로 가기 위해 체코슬로바키아를 통해 헝가리로 이동, 1989년 11월 9일 오전 7시 서독으로의 국경 개방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사태가 발생하는데 동베를린의 공산당 서기장인 귄터 샤보프스키가 동독 주민들을 달래기 위한 여행 완화조치를 발표하는데, 늘 그래왔듯이 알맹이 없는 생색내기용 조치에 불과해 거의 모든 서방기자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탈리아의 한 여기자인 리카르도 에르만이 짧은 독일어 실력 탓에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본사로 전화를 걸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어달라고 요구한다.


이에 담당 데스크는 멀쩡한 장벽이 무너지다니 정신 나갔냐고 기사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에르만 여기자는 현장 기자를 믿고 기사를 실어달라고 큰 소리를 쳤는데, 결국 이 세기의 오보가 타전되고, 이 기사를 본 미국과 영국의 주요 언론들이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고 뒤질세라 기사를 냈고, 미국의 주요방송사인 NBC가 내일 아침부터 동독사람들이 아무런 제한 없이 베를린 장벽을 통행할 수 있게 되었다며 방송을 하고, 이를 본 서독 방송국 국제부 기자들이 세계 각국의 주요 언론사에서 기사가 쏟아져 들어오자 당황한 상태에서 자사 기자들에게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그대로 독일어 방송을 내보냈는데 이를 본 동독 주민들이 뉴스를 보고 축제 분위기 속에서 베를린 장벽 앞으로 몰려오자 국경경비대에서 사실 확인도 못하고 혼란에 빠진 상태에서 결국 장벽을 개방함으로써 100년이 지나도 끄떡없을 것이라던 장벽이 피 한 방울 없이 열리고 말았다.


냉전의 종료는 그로부터 2년 뒤인 1991년 모스크바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고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프카스, 5개의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때였다.


사라예보의 세계1차 세계대전의 발발, 그 찬란한 과거를 가지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역임했던 오스트리아 제국, 또 쇠락한 이집트, 수메르, 몽골제국, 오스만제국 등 역사는 우리가 예측한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우발적인 사건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단지 매 순간 최선을 다함으로써 나중에 후회하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의 목걸이에 아름다운 보석을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것을 달았는지가 인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