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23(토) ~ 25(월)
하노이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오후 3시 10분경 예정대로 캄보디아 씨엠립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기내에서 바라본 캄보디아. 열대우림 사이로 황톳물이 흐른다(홍수로 고생하는 나라의 모습이 보인다)
캄보디아는 802년부터 1432년까지 앙코르 시대라고 불리는 시기에 동남아시아를 지배한 강대한 크메르제국을 건설했는데 중국과 인도의 해상무역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수많은 무역선들이 이곳에 와서 물자와 식량 등을 구입해서 항해를 했던 무역의 거점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과 인도의 문물과 문화가 많이 유입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인도의 영향을 받아 힌두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은 유물과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크메르제국은 자야바르만 2세로부터 자야바르만 7세에 이르는 동안 베트남해안에서 라오스, 미얀마, 말레이 반도에 이르는 강력한 왕국을 건설하였으나 1432년 태국 아유타 왕조에 의한 침략으로 수도인 앙코르를 떠나 프놈펜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쇠락의 길을 걷는다.
근대에 들어서는 1863년부터 1953년까지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2차대전 당시 1941~1945년까지 잠시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으나 1953년 독립을 쟁취한다.1970년대 초 베트남 전쟁 당시 캄보디아와 베트남 국경지대에 대한 미군의 폭격으로 약 70만명의 캄보디아인이 사망하고 그로 인하여 친미정권이었던 론놀 정권이 크메르루주군에 1975년 무너진 후 캄푸치아 공산당을 이끄는 폴 포트에 의해 그 잔혹한 킬링필드가 부자와 지식인을 대상으로 학살행위가 벌어지는데 그 당시 약 13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베트남과 호전적인 태도로 인해 1979년 베트남의 침공으로 친 베트남 정권이 들어서서 크메르루주게릴라와 대립하는데 1991년 UN의 보호 하에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1993년 치러진 자유선거에 의해 시아누크 왕이 복귀하고 정부 수반은 훈센총리가 된다. 이후 연 6% 이상의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지만 아직 세계적으로 가장 빈국중의 하나이다.
캄보디아 씨앤립 국제공항, 내리자마자 지열의 후끈함이 달아 오른다
오후 3시반경 씨엔립 국제공항을 나온 우리는 약 30분 정도 버스로 이동해서 숙소인 퍼시픽호텔로 이동했다. 4시경 도착한 호텔은 아주 깨끗했고 로비에서는 전통악기 연주가, 뒤편엔 풀장과 풀장 주변에 조그마한 파고라들이 있었고 저녁에는 가벼운 안주와 생맥주 등을 즐길 수 있었다.
호텔 뒤편에 있는 풀장
로비에서 전통공연을 하는 아가씨와 함께
오후 5시경 여장을 푼 우리는 발맛사지를 받기 위해 인근에 있는 우리의 민속촌 같은 곳으로 갔는데 내부의 맛사지하는 곳의 규모가 생각보다 엄청나게 크다.
발 맛사지를 받으려고 대기 하는 일행들
맛사지를 약 1시간 정도 받고나니 시원하다. 발뿐만 아니라 전신도 해주는데 좋다. 보통 팁으로 1불씩을 준다고 하는데 마님이 고생 한다며 2불씩을 준다.
맛사지를 마친 우리는 인근에 있는 압사라 뷔페 레스토랑으로 이동해서 식사 겸 캄보디아 전통춤을 구경했다. 전통춤은 총 7막으로 구성되었는데 1막은 기원의 춤, 2막은 처녀 총각의 사랑을 그린 야자열매 춤, 3
은 라마왕의 아
들의 갈등을 묘
사한 형제춤,
5막은 톤레삽호
수의 고기잡이춤,
6막은 크메르제
국의 번영을 기
원하는 압사라 춤,
7막은 파이린의
공작 춤으로 구
성되어 있었다.
24일 아침 8시에 호텔을 출발한 우리는 약 20분 후에 세계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이자 1998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앙코르 왓에 도착했다. 앙코르 왓에서는 즉석에서 사진을 찍어 출입증을 만들어 주었는데 상당히 효율적이다.
앙코르 왓을 배경으로
앙코르에 대한 서구사회의 첫 번째 기록은 1585년 포르투갈의 연대기 작가이자 카프친 수도사였던 코우토가 앙코르를 방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재조명한 것인데 “앙코르 톰 주변의 사원에 귀족들의 무덤으로 보이는 탑이 여러 개 있고, 앙코르 왓은 그 것을 축조한 왕들의 무덤”이라고 하고, 또한 성벽에는 산스크리트어 비문이 있는데 “20명에 달하는 왕의 명령에 따라 완공까지 700년이 걸렸다”고 표현했다.
그 후 1601년 스페인의 방문객 마쎌로는 책에서 캄보디아에는 파괴된 고대 도시가 있다고 했고, 또 스페인의 선교사 가부리엘은 1603년 “1570년 밀림에서 예전에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도시를 볼 수 있었다”고 책에 썻다.그리고 1850년 앙코르를 방문했던 부유부 신부가 대리석으로 되어있다고 표현했고,
앙코르의 발견자로 얘기되는 프랑스의 동식물학자이자, 탐험가였던 앙리 무어에 의해서 1860년 스케치와 기행문의 형식으로 본격적으로 서구사회에 알려진다. 앙리 무어는 사암과 홍토(라테라이트)를 구분했고“하늘의 청색, 정글의 초록색, 건축물의 장엄하면서도 우아한 곡선이 너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고 표현했는데 이 정열적인 탐험가는 1년후 1861년 36살의 젊은 나이에 라오스 어딘가에서 과로로 사망한다.
또한 원나라의 황제가 캄보디아에서 조공을 받아내기 위해 사신으로 보낸 주달관의 여행기인 진랍풍토기가 있는데 14개월간 앙코르 톰에 머물면서 앙코르 톰과 그 일대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한다.
앙코르는 산스크리트어로 도시를 뜻하고 왓은 태국말로 사원을 뜻하는 말로 앙코르 왓을 직역하면 도시의 사원이라는 뜻으로 인류 최대의 사원이다. 앙코르 왓은 수리야바르만 2세 시절인 1113년부터 1150년까지 37년간 2만5천명이 동원되어 지는 달과 뜨는 달의 두 그룹으로 나누어 지어졌으며, 힌두신인 비슈누에게 헌정되었다고 한다.
해자까지 포함한 앙코르 왓의 크기는 동서로 1.5Km, 남북으로 1.3km로 총 200헥타아르이며, 중앙에는 해자를 가로지르는 250m의 다리가 있는데 폭이 12m이다.앙코르 왓은 힌두교의 소우주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해자는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신화의 대양을 의미하고, 연속된 동심의 회랑은 신들이 살고 있는 메루산의 산맥을 의미한다고 한다. 가이드에 따르면 맨 바깥쪽은 미물계를 회랑 안쪽의 공간은 인간계를 꼭대기는 천상계를 의미한다고 한다.
앙코르 왓으로 들어가는 다리
다리 좌.우에 있는 장서각
앙코르 왓의 서쪽회랑의 쿠륵세트라 전투장면
남쪽회랑의 지반처짐 현상
전투장면을 묘사한 남쪽회랑(남쪽에는 역사적 행렬과 천국과 지옥이 묘사되어 있다)
중앙회랑의 안쪽에서 저 멀리 사람들이 천상계로 오르고 있다
천상계에서 내려다 본 앙코르 왓의 서쪽 정문의 모습(진입교량과 좌우에 장서각이 보인다)
수많은 유물로 가득 차 있던 앙코르 왓에 그동안의 유실과 향후 관리를 위해 중요유물은 박물관에서 보관한다고 한다.
이 곳이 아름다운 앙코르 왓을 보여주는 좋은 View Point라고 한다
캄보디아의 명물 운송수단인 툭툭이를 타고 계신 마님
따 프롬은 12세기 후반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 탄생한 사원으로, 비문에 의하면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의 은혜에 봉헌하기 위하여 1186년에 건설하였다고 한다. 이곳을 발굴한 프랑스 발굴단은 이곳을 원상복구 시키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키로 하여 더욱 감동적인 곳이다.
따 프롬 입구의 모습
거대한 무화과나무의 일종인 스펑(SPON)나무가 돌틈에 뿌리를 내려 사원을 파괴했다. 수령은 약 600년
안에는 보석의 방과 통곡의 방이 있는데 보석
의 방에서는 다이아몬드 35개, 진주 약 40,000개,
보석 4,540개 등 수 많은 보화가 장식되었었다고
하는데 옆의 사진에서 뚤린 구멍들이 보석이 장식
되었던 구멍이라고 한다.
통곡의 방에서는 좌.우에 서서 가슴을 두드리면
공명현상으로 쿵쿵 울리는 소리를 들을수 있다.
안젤리나 졸 리가 쌍권총을 들고 열연한 영화
“툼 레이더”의 배경이 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안젤리나 졸리는 영화 촬영을 위해서 11개월간
씨엠립에 머물렀고 레드피아노의 단골 고객이
었다고 한다.
유적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나무 옆에서
크기는 정말 크네
바이욘
바이욘은 자야바르만 7세와 그 후대 왕들이 건축했는데, 왕의 권위가 안정되자 무적의 도시를 건설할 욕심으로 인구 100만 명이 살 수 있는 거대도시와 요새를 건설하는데 그것이 앙코르 톰이고, 바이욘은 암코르 톰의 중심으로 힌두교의 수미산을 상징한다.
앙코르의 미소라 불리는 사면상 앞에서
정교한 압사라 댄서의 모습
복원을 기다리고 있는 앙코르 톰의 유적들. 안타갑께도 크메르루즈군에 의해 유적발굴단이 정리해 논 많은 자료들이 훼손돼서 유적을 입체로 하나 하나 컴퓨터 상에서 가조립을 해야만 알 수 있단다.
바푸온으로 들어가는 천상의 다리
바푸온은 1060년 우다야딧야바르만 2세에 의해서 힌두교 시바신에게 헌정된 사원으로 5층으로 된 거대한 피라미드형 사원이다. 외부담은 425m*125m에 달하고 동쪽 입구 고푸라에서 사원까지 172m 길이의 다리가 놓여져 있는데 천상의 다리라고 불리는 이 다리는 2세기 후인 1250년경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천상의 다리와 바푸온 전경
천상의 궁전으로 불리는 피미아나까스
천상의 궁전으로 불리는 피미아나까스는 10세기 후반 라젠드라바르만 2세때 착공하여 11세기 초반 수리야바르만 1세 때 완성되었다고 한다. 13세기 말 캄보디아를 방문했던 원나라의 사신 주달관의 진랍품토기에 따르면 탑 가운데에 머리가 아홉 개 달린 이 나라 토지의 주인인 뱀의 정령이 살고 있는데 이 정령이 매일 밤 나타나 왕과 동침하며 교접을 하는데 아무도 들어갈 수 없고 왕이 하루라도 이 성소에 가지 않으면 반드시 재앙이 나타난다고 기록하였다.
마님 조심하쇼..
피마아나까스 동쪽에 있는 코끼리테라스는 왕의 광장을 마주보고 있으며 그 길이가 300m에 달하고 실물크기의 코끼리 조각으로 유명하다.
꼬끼리테라스 한 가운데에 있는 왕의 계단
왕의 광장 앞의 넘어질 듯한 유적이 오늘날의 앙코르유적의 보존이 시급함을 알리고 있다.
거대한 앙코르 톰 남문의 모습
앙코르 톰 남문으로 가는 길의 야생 원숭이 떼
피마아나까스 북쪽에 있는 길거리 상점에서 코코아를 까서 시원하게 마시니 한결 더위가 가신다. 거기서 약 30분을 쉰 후 코끼리테라스를 보고 앙코르 톰을 나선시간이 오후 4시 10분. 오늘 하루 종일 걸어서인지 발걸음이 무겁다. 일단 호텔로 가서 잠시 쉰 다음 저녁을 먹는 것으로 오늘 일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25일 아침 오늘은 우리 관광이 팩키지 상품이다 보니 몇 군데 쇼핑할 곳을 방문하고 저녁 늦게 스카이윙스 항공편으로 한국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아침 8시에 체크아웃을 한 우리는 인근 20분 거리에 있는 실크농장으로 향했다. 우리나라의 누에보다 크기가 작은 누에들이 원형 광주리에 들어있는데 누에 실을 뽑을 정도가 되면 그 곳으로 옮겨서 누에고치를 만들 수 있도록 한단다. 누에는 알에서 부화해서 누에고치에서 나방으로 자라기까지 47일이 걸린단다.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캄보디아 아가씨
직조기에서 실크제품을 만드는 아가씨들
크메르루주의 폴 포트 정권에 의해 목숨을 잃은 많은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건립한
작은 킬링필드라고 불리는
왓트마이 사원 건립시 그 자리에서 발견된 많은 유골들이 보관되어 있다.
동양최대의 호수인 톤레삽 호수 주변의 선착장과 높은 하늘이 주변의 가난한 삶과 대조를 이룬다.
톤레삽 호수에서 뱀을 목에 걸고 1불짜리 사진을 찍으라고 하는 여자아이
동양최대 호수답게 끝이 보이지 않는 톤레삽 호수(단위면적당 물고기가 가장 많단다)
안젤리나 졸리가 즐겨 찾았다는 레드피아노는 위. 아래 층 모두 시원한 맥주 한 잔 하려는 관광객들로 가득 붐비고 있다.
골목길에는 각종 기념품 가게가 줄지어 있었데, 예전 프랑스 식민지여서 그런지 유럽인들도 많이 보인다. 기념품들은 목공예품, 수공예품, 각종 스카프 등이 관광객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우기철 임에도 불구하고 관광시에는 비를 맞지않고 꼭 이동시나 숙소에 들어온 후에 비가 오는 행운이 있었는데 마지막 날 톤레삽 호수에서도 돌아오는 배 안에서 비가 쏟아졌다.
스콜답게 약 40분가량 쏟아진 후 다음 목적지인 보석가게를 잠시 들른 후 도착한 바라이 호수에서는, 그새 비가 그쳐 맑은 날씨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바라이 호수는 별로 볼 것이 없었다.
오후 6시경 식당에서 마지막 저녁을 먹은 후 찾은 레드피아노는 관광객들로 그득하다. 자리가 없어서 우리는 맞은편 카페에서 맥주를 한 잔씩 하면서 캄보디아의 마지막 날을 즐기고 있었다. 마지막 발맛사지와 출국을 기다리면서........
또 좋은 분들과 추억의 보석을 인생이라는 목걸이에 한 알 더 꿰기를 희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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