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마실가기-(7) 리스본, 까보다로까, 파티마
2017. 4. 27(목)
호텔 조식 후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으로 이동 (약 4시간 30분 소요)
포르투갈의 정식 명칭 포르투갈 공화국이다. 유럽 서남부에 위치한 나라로, 이베리아 반도의 서부와 북대서양 상의 군도들을 그 영토로 한다. 국토의 총 면적은 92,090 km로, 대륙부와 대서양 상의 두 자치지역인 아소르스 제도와 마데이라 제도로 구성되어 있다. 포르투갈은 유럽 대륙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나라이다. 이름은 제2의 도시 포르투의 라틴어 이름 "포르투스 칼레"(라틴어: Portus Cale)에서 유래하였다.
포르투갈 지역은 선사시대부터 계속 사람이 거주해왔다. 초기의 켈트인들은 후에 로마 공화정에 통합되었고, 이후 수에비족과 서고트족 같은 게르만족이 정착하였다. 8세기부터는 무어인이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하기 시작한다. 기독교도의 레콩키스타 도중에 초기엔 갈리시아 왕국, 후엔 레온 왕국의 일부로 포르투칼레 백작령이 성립된다. 1139년 포르투갈 왕국의 성립과 1143년 독립 승인, 1249년 국경의 확립을 통해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 국가로 거듭난다.
15세기와 17세기 사이에 대항해 시대 탐험의 결과로, 포르투갈은 서양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남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를 아우르는 제국을 건설하였고, 이를 통해 전 세계에서 경제, 정치, 군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강대국으로 거듭났다. 포르투갈 제국은 사상 첫 세계 제국이었고, 1415년 세우타 정복부터 1999년 마카오의 중국 반환까지 거의 600년 동안 이어진, 가장 오래 지속된 식민지 제국이었다. 하지만 포르투갈의 국제적 중요성은 19세기, 특히 식민지였던 브라질의 독립 이후 크게 줄어들었다.
1910년 혁명으로 공화국이 성립되었고, 포르투갈 왕가는 추방되어 제1공화국이 성립되었지만, 권위주의 정권인 이스타두 노부가 형성되었다. 1974년 카네이션 혁명 이후 대의 민주주의가 성립되었고,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이 종식되어 마지막 해외 주였던 모잠비크, 앙골라 등이 독립하게 된다.
오늘날 포르투갈은 비교적 HDI와 1인당 GDP가 낮지만 선진국 중 하나로 여겨지며, 인간 개발 지수 역시 "매우 높음" 수준에 속한다. 삶의 질은 19위로, 세계적으로도 최상 수준의 의료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가장 세계화되고 평화로운 나라에 속한다.(위키 백과)
▶ 테주 강의 귀부인이라고 불리는 '벨렝탑'
벨렝탑은 리스본 벨렝에 있는 타워로 인근의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515년 마누엘 1세가 항해가였던 '바스코 다 가마'의 원정을 기념하기위해 세운 탑이다. 마누엘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총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있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해있는 벨렝탑은 원래 물 속에 세워진 건축물이었으나, 지진으로 인해 수면 위로 그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 1519년, 완공이 된 후에 리스본으로 들어오는 외국 선박들을 감시하는 용도로 사용되어 통관 절차를 밟던 곳이었고 건물 1층은 19세기까지 정치범을 수용하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어있으며,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고풍스럽고 섬세함이 묻어나는 탑 내부를 지나 꼭대기에 오르면 벨렝 지구의 풍경을 360도로 감상할 수 있다.
▶ 마누엘 양식의 화려한 걸작 '제로니무스 수도원’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마누엘 1세가 항해가였던 '바스코 다가마'의 귀환을 기념하기위해 세운 것으로, 수도원의 본래 명칭은 '하이에로니미테스 수도원'이었다. '산타 마리아 예배당'이 있었던 곳에 마누엘 양식으로 지어졌다. 16세기 초에 짓기 시작하였고 완공하는데에 약 170여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마누엘 양식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르네상스 디자인의 섬세한 조각들이 건물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웅장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풍기는 성당 내부의 다양한 장식들도 볼만하다. 지진의 피해를 입지 않았기 때문에 초기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으며, 198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 항해가 '바스코 다가마'와 시인 '루이스 바스데 카몽스'의 무덤이 있어 높은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고고학 박물관과 해양박물관까지 갖추고 있어 볼거리가 가득하다.y 인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땅끝 마을 카보 다 호카(로까 곶)로 이동 (약 40분소요)
▶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 호카 곶 절경에서 대서양 관망
리스본에서 서북서쪽으로 약 40Km 신트가의 산지가 대서양으로 돌출된 곶으로 높이 144m의 화강암 절벽에 등대가 있으며, 이곳 선원들은 리스본의 바위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서쪽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끝으로 계속가면 나오는 곳이 이곳 호카 곶이다. 위도가 북위 38도 47분이다. 딱 38선이다.
성모마리아 발현으로 봉헌된 파티마로 이동 (약 1시간 40분소요)
▶ 성모 마리아의 목격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파티마 대성당 및 파티마 광장
파티마 성지는 세계의 재단으로 불리고 있으며, 포르투갈 인구의 84.5%(2001년 통계)가 로마 가톨릭을 따른다. 파티마는 전에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아라비아 이름인 파티마 (Fāţimah, 아랍어: فاطمة)에서 유래하였다.
파티마 대성당은 1917년 세 어린이가 파티마의 성모를 목격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신고전주의 형식으로 세워졌다. 대성당의 중심 탑은 65미터로 1928년 5월 13일에 건축하였으며, 측면에는 수도원과 병원 건물이 회랑으로 넓게 이어져 있다. 대성당의 묘소에는 스페인 독감으로 1919년과 1920년에 사망, 2000년에 시복된 히야친타와 프란시스쿠 마르투, 2005년 사망한 루시아 두스 산투스, 총 세 명의 성모 목격자가 매장되어 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성삼위 성당(Igreja da Santíssima Trindade)이 광장 근처에 있다.(아래)
이름이 무엇이냐는 어린이들의 물음에 대해, 여인은 “나는 로사리오의 성모다.”라고 대답하였다. 어린이들은 코바 다 이리아라고 불리는 목초 지대에서 성모 발현을 경험한 것이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성모 마리아를 위한 큰 규모의 횃불 행렬 행사가 저녁마다 이루어진다. 코바에 모인 순례자들은 성모 마리아가 어린이들 앞에 나타났다고 전해지는 곳에 세워진 작은 경당에서 길게 줄지어 행진한다. 매년 파티마의 성모 발현 날짜인 5월 13일과 10월 13일에는 길에 가득 찬 100만여 명의 순례자가 성소를 찾아온다.(위키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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