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쇠의 마실가기

서유럽 마실가기(10)-퓌센, 로텐부르크

마당가에서 2017. 1. 21. 17:58

2015. 10. 13(화)

 

오늘은 호텔에서 아침식사 후 동화의 나라 퓌센으로 이동(약 2시간 소요)해서 디즈니랜드 성의 모델이며 백조의 성으로 알려진 노이슈반스타인 성을 관람하고 중세 유럽의 고풍스러운 소도시 로텐부르크로 향하는데(약 2시간 반 소요),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그 유명한 로만틱 가도(Romantische Strasse)이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헤렌킴제 성과 같이 루트비히2세 왕이 지은 성으로, 여전히 미완성인 상태로 남아있는 성이다. 1869년 착공되어 1896년 완공되었는데, 이 성의 완공되기 전 갑작스런 루트비히 2세의 죽음으로 인해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었다. 어릴 때 루트비히2세는 호엔슈방가우 성에서 자랐으며, 어릴 적부터 산을 보면서 저기에 성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한 것을 왕이 된 뒤에 실제로 지은 성이며, 산 것은 약 9일정도만 성에서 머물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많은 관광객들이 둘러보는 성안의 16개의 방은 왕의 죽음 전에 완성된 것이다.


 

노이슈반슈타인 성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다른 유명한 성이나 궁전과는 달리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주 루트비히 2세와 소수 측근들의 개인적인 용도로 지어졌다. 루트비히는 왕세자 시절인 일곱 살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집짓기 블록을 선물 받고 나서부터 집이나 성·교회를 만드는 데 취미를 붙였다. 평생 건축에 대해 가졌던 열정은 이렇게 하여 그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의 건축에 대한 열정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1832년 아버지 막시밀리안 2세(Maximilian II, 1811~1864)는 옛날부터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을 둘러싼 설화가 전해지는 폐허의 요새 호엔슈방가우 성을 사들여 중세 양식의 네오고딕으로 고치게 했다. 호엔슈방가우 성은 탄호이저가 로마에서 돌아오는 길에 밤을 지냈다고 하는 전설이 있어 ‘백조의 성’이라고 불렸는데 막시밀리안 2세는 성 내부에 그 전설들을 그리도록 했다.(아래 : 호엔슈방가우 성)

 

루트비히는 이 성에서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와 함께 피아노를 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당시의 피아노가 이 성에 아직도 전시되어 있다. 루트비히는 장성한 후에도 바그너와 죽이 잘 맞았다. 바그너는 게르만 민족의 신화를 기초로 하여 오페라 〈로엔그린〉과 〈탄호이저〉 등을 만들었는데 루트비히는 바그너의 작품에 나오는 전설을 표현하는 건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황금빛의 호엔슈방가우 성도 아름답기는 하지만 게르만 인들의 신화를 모두 담기에는 크게 못 미쳤기 때문이다.






1960년 루트비히는 바르트부르크 성을 보고 큰 감명을 받고는 적어도 바르트부르크 성과 같은 성을 지어야만 로엔그린, 파르지팔, 지크프리트, 트리스탄, 탄호이저 같은 독일 신화의 주인공들을 살아 숨 쉬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성을 짓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다짐했다. 1862년 열여덟 살 루트비히가 바이에른의 왕위에 오른 후 뭔헨 왕궁의 건립과 바그너를 워낙 총애한 나머지 바그너 오페라극장 등에 국고를 낭비하고 바그너가 정치에 개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자, 국민들과 궁정 관리들은 바그너를 단호히 거부했고, 결국 루트비히 2세는 1865년 바그너에게 바이에른을 떠나달라고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그너를 쫓아낼 수밖에 없었던 루트비히 2세는 자신을 비관하면서 자살과 퇴위를 생각하다가 호엔슈방가우 맞은편에 바르트부르크성과 같은 성을 건설해 독일의 신화를 모두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해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 중 하나인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루트비히 2세는 재정악화 때문에 자신의 역작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완공을 볼 수 없었다. 그는 해마다 여러 곳에 궁성 건축을 위해 약 150만 마르크를 사용했는데 그 정도로는 그의 계획을 이룰 수 없었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루트비히 2세는 국가 예산마저 낭비하게 되고 결국 반대자들에 의해 1886년 6월 9일 금치산자로 선고를 받은 후 왕위에서 물러났다. 네 명의 정신과 의사는 루트비히 2세를 검사하지 않은 채 정신병자라고 결론지었다. 그들은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건설하려는 것 자체가 정신병의 결정적인 증거라고 했다. 정신병자 판정을 받고서 강제로 퇴위당한 후 루트비히 2세는 슈타른베르거 호수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공식 사인은 자살이었다.


로텐부르크는 21세기에 만나는 중세도시라고 불리는데 로만틱 가도의 하이라이트로, 성벽으로 둘러싸인 거리가 즐비하여 마치 중세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제 2차 세계대전으로 도시의 약 4할 정도가 파괴되고 소실되었으나, 완전하게 중세도시를 복원시켜놓은 곳으로 오랜 시간을 뛰어 넘어 근세에 그 가치를 인정받은 '중세의 보석'이라 칭송되는 고도이다. 납작한 돌을 깐 구시가와 성벽 위로의 산책, 타우버 강을 따라 내려가는 하이킹도 즐겁다.


히 로텐부르크는 겨울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더욱 관광명소로서 빛을 발하는데 이곳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 때문이다. 이 시즌에는 도시 전체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은은한 화려함을 자랑하여 크리스마스 마켓 곳곳에서 잘 구워진 아몬드의 고소한 냄새가 시장 곳곳에서 풍긴다.


시장 광장에 있는 시 청사(Rathaus und Marktplatz)는 1250년에서 1400년대에 지어진 르네상스양식의 건물이다. 내부에는 황제의 방이라 불리는 홀이 있고 건물 위로 60m의 탑이 솟아 있다. 200개의 계단을 올라 탑의 전망대에 오르면 구시가지(Altstadt)의 그림 같은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곳에서 가장 유명한건 시 의원회관에 달려있는 벽시계 인형인데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 정각마다 인형극이 시작된다. 우측 사진의 빨간 바탕의 시계 좌.우의 창문이 열리고 장군과 시장의 인형이 나타나 독일에서 신교와 가톨릭 간에 벌어진 30년 종교 전쟁 때 에스파냐 장군이 제안을 하는데 누가 자신이 따라주는 포도주를 단숨에 마시는 사람이 있으면 시민들을 죽이지 않겠다고 제안하고, 이에 시장이 나서서 단번에 마셔서 시민을 구했던 Nusch 시장의 이야기를 재현한단다.



마르크트 광장과 시청 건물 뒤에서는 매년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크리스마스 시장이 열린다.


시청사 뒤편에 있는 성 야곱 교회는 1311년에 세워진 고딕 양식의 건축물로 로텐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개신교 교회이다. 교회를 짓는데 1311년 ~ 1484년 까지 170년이 걸렸다. 교회 2층에는 성혈 제단이 있는데 예수의 성혈 3방울이 들어 있다고 한다.


성 야곱 교회 옆에는 여러 사람이 앉아있고, 또 기도하는 동상도 있는데 뭘 묘사한 것인지 궁금하다.


성 야곱 교회의 전면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