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5)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
BC 356년 광대한 페르시아제국의 정복자이자 여러 세기동안 이 지역의 미래에 영향을 끼친 마케도니아의 필립왕의 아들 알렉산더가 태어난다.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과학적 호기심과 지적성취가 뛰어났던 그는 호머의 일리아드를 늘 끼고 다니며 아킬레스와 같은 영웅이 되고자 노력한다. 필립왕의 뒤를 이어 26세에 마케도니아의 왕위에 오른 알렉산더는 그리스를 일통한 필립왕의 뒤를 이어 5년간의 전투 끝에 페르시아제국의 다리우스3세를 꺽고 제국의 기틀을 다진다. 페르시아를 정복한 알렉산더는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동쪽으로 진군을 계속하여 과거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였던 오늘날 Afghanistan과 Balochistan 지역인 Gedrosia를 점령하고 계속해 Bactria까지 점령하고 도시를 형성하고 요새를 세운다.
BC 327년 파키스탄지역의 침공준비를 마친 알렉산더는 사절단을 보내 이 지역의 지배자들을 부르는데 참화와 혼란을 우려한 Taxila의 왕이었던 Ambhi와 같이 두명의 장군을 보내 그 유명한 Khyber Pass와 Peshawar Valley를 따라 진군하게 하고 알렉산더는 점령지의 복속하지 않은 부족들을 점령하면서 선발대와 합류한 후 Taxila로 진군하게 된다.
Taxila 왕인 Ambhi의 극진한 환대 속에 Taxila에 들어선 알렉산더는 그에게 그 영토의 지배자로 인정하고 끝까지 저항하는 Jhelum River 남동쪽의 Porus 왕을 굴복시키러 Salt Range를 넘어 Nandana Path를 지나 Jhelum 강을 건너 Polus 왕을 무찌른 알렉산더는 왕으로 대우해달라는 Porus 왕의 용기에 감탄해 결국 그의 왕국을 그에게 맡기고 귀국길에 오른다.
그 당시 전세계가 하나의 땅으로 이루어졌으며 커다란 대양이 둘러싸고 있다고 여기던 그는 인더스 강을 따라 내려가면 결국은 그리스 통치하에 있던 나일강과 연결될 것으로 믿었다. 당시 건설한 도시 Nicaea와 애마인 부세펠러스(Bucephalus)의 죽음을 기린 Bucephala는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아마도 매년 되풀이되는 몬순의 홍수에 덮인 것으로 짐작된다.
젤럼 강변에서 함선을 만드는 동안 Chenab강과 Ravi강을 건너 번창하고 있는 도시 Sangala(지금의 Lahore 인근)에 들어선 알렉산더는 커다란 환대 속에 사냥개를 선물로 받는다. Ganges 강을 따라 펼쳐진 평원에 대해 알게 된 알렉산더는 계속 동진을 원했으나, 8년간의 전투와 향수, 그리고 몬순의 기후에 고통 받은 부하들은 복귀를 원한다. 결국 젤럼 강으로 되돌아온 알렉산더는 함대를 이끌고 젤럼 강을 따라 남쪽으로 향한다.
젤럼 강과 체납 강이 만나는 곳에서 소용돌이를 만난 알렉산더는 배들끼리 충돌사고가 발생하고 알렉산더조차도 헤엄으로 탈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젤럼 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 알렉산더는 높은 성벽에 둘러싸인 생애 가장 위험한 Multan 전투에서 심각한 부상을 당하고, Multan에 살던 여자와 아이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성난 마케도니아 군에 의해서 학살을 당한다.
Multan의 멸망을 목격한 다른 부족들의 항복 속에 순조로운 남행을 거듭하던 알렉산더는 Pattala에서 본국으로의 귀국길에 들어서는데, Sindh 남서쪽 부족의 저항과 인더스강 유역 부족들의 반란으로 보급이 끊어지면서 정복전쟁 중 가장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다.
Makran 사막에 들어선 알렉산더는 40,000여명의 병력중 절반이상이 죽은 후에야 겨우 지금 Iran의 Kerman에 도착한다. 도착 후 제국의 정비를 시작한 알렉산더는 Persian Gulf 와 Red Sea 연안의 탐험을 위해 전략적 요충지에 항구를 건설하는 한편 카스피 해 탐험을 위해 함대건조를 명하나 갑자기 사망하고 만다.
역사에 따르면 그의 부하들에 의한 독살의혹과 Multan 전쟁의 영향에 의한 폐렴 등의 보고가 있었다고 한다. 그의 갑작스런 사망 후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통일된 제국의 꿈은 알렉산더의 죽음과 같이 BC 323년 종말을 맞는다.
그의 죽음이후에도 1,000(BC300~AD700)년 동안 그의 침략으로 인한 영향이 남아 있었으며, 그가 가져온 그리스문화가 그가 세운 수백 개의 도시와 요새들에서 계속 꽃을 피우고 살아남아 지금도 북쪽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현지에 정착한 그리스군인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