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쇠의 마실가기

하롱베이 마실가기

마당가에서 2011. 8. 10. 19:27

 

2011. 7. 21(목) ~ 23(토) 

 

금년 여름휴가는 양평에서 텃밭과 우물펌프를 손을 볼려고 했는데 딸래미가 좋은 상품이 있다고 예약을 해서 갑자기 하롱베이와 앙코르 왓을 가게 됐다.

 

인천공항에 7시까지 오라고 해서 아침5시경에 일어나서 챙기고 5시반경에 나오는데 그래도 딸이 일어나서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하면서 공항버스 타는 곳까지 태워다준다.5시45분에 버스를 타고 한참을 돌다 돌아 인천공항에 오니 거의 7시다. 맨 끄트머리 M 창구에서 전자항공권과 여행안내 서류를 받아들고 천천히 짐 부치고 보딩패스 받고 안으로 들어가니 8시경 여유가 1시간 반 정도 남는다. 현지서 먹을 소주5개 들이 한 팩을 사니 6불이란다. 타고 갈 캄보디아 국적기인 스카이 윙스는 비행기도 낡았고 좌석도 좁다.

                             

DC-9 기종으로 엔진이 날개가 아닌 뒤쪽에 있어 뒤가 상당히 시끄럽다.

 

저가항공으로 아침을 안 줄줄 알고 집사람과 우동을 한 그릇씩 했는데 그래도 아침을 준다.

첫 번째로 가는 베트남은 첫날은 하노이 시내 관광을 하고 저녁 무렵 하롱베이로 이동할 예정이다.

베트남은 오래도록 프랑스의 식민지로 있다가 2차대전 말기에는 일본의 점령 하에 있었는데 일본이 패망하면서 다시 프랑스가 지배하려 하자 베트남의 호치민이 미국 등 전 세계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도움을 못 받고 러시아의 스탈린의 도움을 받아 독립하게 되면서 결국 공산화의 길을 가게 된다.

 

결국 베트남의 공산화를 우려한 미국이 1964년 미국의 구축함 매독스호를 월맹이 어뢰로 선제공격했다고 하며 보복하는 사건인 통킹만 사건이 발생하고, 결국 베트남전에 참전하게 되는데 1971년 미국 국가안보국의 공개보고서를 인용해 뉴욕타임스에 의해 이 사건이 조작되었음이 밝혀진다.

 

1955년부터 75년까지 치러진 월남전쟁(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160만명의 베트남인과 70만명의 캄보디아인 5만8천명의 미군, 그리고 5천여명의 한국군이 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는다.이 전쟁의 최대수혜국인 대한민국은 일본의 식민지 배상금과 광부와 간호사를 담보로 한 독일의 차관으로는 부족한 자금을 이 전쟁에서 확보하고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진행시켜서 오늘날 우리나라의 초석을 만든다.

 

베트남의 명물인 씨클로(자전거 인력거)를 타고 있는 관광객들

베트남은 인도차이나반도 우측에 있는 나라로 위-아래로 길게 늘어서 있는데 길이가 무려 2,700Km에 달한다고 하며, 면적은 우리나라의 약 1.5배,인구는 약 8,600백만명이고, 우리와는 2시간의 시차가 있다.

12시 반 하노이 국제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한국음식점으로 이동해서 점심을 먹었는데 제육볶음과 쌈으로 맛있는 식사를 하고 바로 베트남의 명물인 씨클로를 타러갔다.씨클로는 자전거 앞에 혼자 타는 인력거를 붙인 형태였는데,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인들이 즐겨 탔다고 한다. 부슬비가 내리는 호치민 시가지를 씨클로를 타고 가는데 교통량도 많고 특히 오토바이가 많았는데 신호등도 없는 길을 건널 때면 위험하기 짝이 없다.

 

 

바딘광장 앞에 있는 호치민 영묘

 

베트남을 통일한 호치민은 베트남전쟁의 승리를 보지 못하고 1967년 사망하고 만다. 베트남민들에게 호아저씨라고 불리던 호치민은 주석으로 권력의 정점에 서 있었지만 자신의 사치와 호사와는 거리가 먼 검소한 생활로 유명한데 장식이 없는 작은 방1칸과 서재에서 지냈으며, 당시 주석궁을 사용하지 않고 정원사가 사용하던 작은 건물을 사용하고 주석궁은 손님접대용 만찬시만 사용했다고 한다. 죽을 때도 자신의 무덤을 만들지 말고 화장해 달라고 했으나 국민들은 그를 방부처리해서 영묘에 안치했으며 2년에 한 번씩 러시아로 보내져서 계속 방부처리를 한다고 한다.

 

호치민 영묘는 외국인조차도 묘소 200m 전방에서 차를 내려 걸어와야 하고 흰색 선이 그어진 금 안으로는 들어오지도 못하게 막는다.

 

호치민이 생전에 사용하지 않고 만찬용으로만 사용했다는 호치민궁(당시 주석궁)

 

   

베트남의 국보1호인 한기둥 사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된 애국지사들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지름1.25m의 원통형 기둥에 가로,세로 3m의 정사각형의 사원이 물에 핀 연꽃모양으로 세워졌다.

오후 4시경 호치민 영묘 주변을 구경한 우리 일행은 다시 버스를 타고 하롱베이로 출발했다.

 

 

모내기를 하고 있는 베트남 농민들

 

베트남은 우리처럼 품앗이라는 것이 없고 자기의 논에 자기 식구들만 모내기를 하는데 남자들은 대부분 국가를 위해 길거리에서 조그만 의자를 놓고 정치를 하고, 농사는 주로 여자들이 한단다. 정말 남자들에게는 천국이네.

 

하노이에서 하롱베이까지는 약 4시간이 걸리는데 중간에 휴게소에 약 20분 정도 들렀다가 다시 길가에서 열대과일을 먹고 하다보니 약 8시 경에 하롱베이에 도착했다. 삼겹살에 소주 한 병 곁들인 기분좋은 저녁식사를 하는데 소주 한 병에 7불이란다. 물론 가지고 있는 소주는 먹을 수 없단다.

 

하롱베이는 하노이에서 약 180Km 떨어진 하롱만에 위치하고 있는데 용이 내려와서 동굴속에 살던 용이 이리 저리 움직인 곳에 물이 차서 섬이 만들어 졌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1993년 유네스코로부터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이름이 있는 섬만도 1,000개가 넘고 이름없는 작은 섬까지 하면 무려 3,000여개나 된다고 하는 하롱베이는 대한항공이 광고의 배경으로 해서 우리에게는 친숙해졌다.

 

중국의 계림, 우리나라의 금강산과 더불어 동아시아의 3대 경관으로 꼽힌다고 한다.

 

 

 

하롱베이의 밤거리

 

이동식 가게

 

멀리서 보이는 하롱베이

 

우리 마님 너무 좋단다

 

선상에서 다정하게 한 컷

 

베트남 전통모자인 “농”을 쓴 마님

 

하노이의 명물 “키스바위” 앞에서

 

하롱베이의 명물인 바닷속의 바다

 

이 곳에 들어오니 이 놈이 바나나 얻어먹을려고 희한한 자세로 폼 잡고 있다

 

귀면이 섬에 새겨져 있으니 귀면섬이라고 불러야 하나?

 

그래 먹고 죽자

 

기괴한 모습의 석회동굴인 천궁동굴

 

 

오붓하게 한 컷

 

하롱베이에서 걸을 수 있는 섬은 10여개에 불과한데, 그 중에 전망대가 있는 띠톰섬에서

 

 아름다운 하롱베이 전경


오랜 시간동안 식민지배와 전쟁의 포화속에서 고통받은 베트남, 지금은 아시아의 잠룡으로 승천을 기다리는 나라, 또한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과의 깊은 인연으로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대한민국에게만 비자 피가 면제되는 나라, 지금도 하롱베이 요지에 있는 섬의 개발권이 김우중 회장에게 주어져 있는데 대우그룹의 해체로 개발이 중단되어 있는 섬의 개발권을 다른 나라에서 아무리 많은 혜택을 내 걸어도 김우중 회장에게 준 개발권을 고수하고 있는 나라 베트남.

 

여자들이 대부분 화장을 하지 않고 머리를 생머리로 길게 기르며 화장을 하거나 파마를 하면 야하게 생각하는 나라, 아침이면 농을 쓴 아낙네가 아오자이를 입고 베트남 전통 지게인 간항을 메고 가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나라, 토지가 국가소유로 집을 지을 때 토지의 사용권을 획득하는데 그 토지의 폭이 4.5m로서 집의 크기가 거의 4.5m폭에 길이 13m로 거의 동일한 나라, 농사의 대부분을 여자들이 짓고 남자들은 길가에 조그마한 의자에 앉아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며 정치를 주로 하는 나라, 쌀의 주요 생산국으로 남쪽은 3모작, 북쪽은 2모작이 가능한 나라, 베트남 전쟁으로 우리나라 경제개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나라 베트남이 우리나라와 적극적인 우호협력으로 더욱 더 좋은 나라가 되길 기대해 본다.

 

 

아오자이는 입지 않았지만 아침 일찍 농을 쓴 아낙네가 간항을 메고 가고 있다.

 

전형적인 베트남 가옥 모습